거제 삼성중공업 인근에 장평오거리 주변 상권을 돌아보니 임대 팻말이 나붙은 가계가 많이 보였다. 장평오거리에서 삼성호텔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장사한 지 4년째라는 이정수씨(39)와 대화를 나눴다.

“권리금은 생각도 못해요. 아니, 하면 안 돼요. 단돈 천만 원이라도 걸죠? 그럼 그거 절대 안 나가거든요. 목이 좋고 나쁘고 그런 것도 옛날 말이고요. 사람이 있어야 장사든 뭐든 하죠….”

“글쎄, 삼성 조선소가 완전히 놀지는 않아요. 또 작년이랑 올해 일감을 생각보다 많이 받긴 했다는데, 아직까지 동네 상황은 그대로지요, 뭐. 현대 조선소 꼴 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거제 삼성중공업 정면에서 200m 채 떨어지지 않은 장평오거리 주변에서 상가 임대 현수막은 흔히 볼 수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거제 삼성중공업 정면에서 200m 채 떨어지지 않은 장평오거리 주변에서 상가 임대 현수막은 흔히 볼 수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지난해 폐쇄된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기로에 선 옥포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을 뒤로 하고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로 발길을 돌렸다.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기업회생절차를 밟는 대우조선해양의 아주동 상권은 고현동과 달리 미미하나마 회생의 봄기운이 느껴졌다. 

지난해 수주 목표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우여곡절 끝에 흑자전환한 데 이어 올해 1분기 수주목표는 초과 달성한 대우조선해양. 올해 경영이 악화될 경우 인력감축 등 추가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 수주 실적은 163척으로 세계 최고다. 4월말 현재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수주 실적도 175척으로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금에 이르러 있다.

대우조선해양(구 대우조선)은 김우중 회장의 전 대우그룹에서 출발해 한때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조선사 빅3로 불렸던 기업이다. 그러나 IMF외환위기 당시 경영이 악화되어 1999년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구 한국산업은행)이 공적자금을 지원한 후 전액 출자전환하면서 2001년 정상화되었다.

이후 KDB산업은행은 정상화된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려 했지만, 잠수함 등 특수선을 건조하는 기업의 특성 상 민간, 특히 해외에 매각될 경우 자칫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여론과 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비등해지면서 계획을 접어야 했다.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상황, 그러나 2008년 세계 4위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적인 경기후퇴 이후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세계교역량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선박 건조물량이 급감한 데다 중국의 추격과 엔저까지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기로에 선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 정문 @스트레이트뉴스
기로에 선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 정문 @스트레이트뉴스

선박 수주에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조선업계 전체가 불황에 휩싸이자, 대우조선해양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를 뽑아내는 시설인 해양플랜트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기술력 부족이라는 핸디캡이 발목을 잡았다. 그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초저가 입찰에 나섰고,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당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역시 해양플랜트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그들은 치밀한 사업계획과 경영진단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그렇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회계를 맡았던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이 2014년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누적 적자가 5조 원을 넘어섰다고 폭로했던 것이다.

결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본사와 옥포 조선소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남상태, 고재호, 두 전임 사장이 2006년부터 2014년까지 10조 원 규모의 분식회계(Window Dressing)를 한 사실, 그럼에도 2,000억 원대 성과급 잔치를 벌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우조선해양의 방만 경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 등의 초호화판 여행에 제공된 요트와 동일한 모델의 요트(자료:김진태 의원실)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 등의 초호화판 여행에 제공된 요트와 동일한 모델의 요트(자료:김진태 의원실)

홍보대행사인 뉴스커뮤니케이션의 박수환 대표,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8박 9일 동안 다녀온 초호화판 여행, 유명 건축가 이창하와 남상태 사장의 비자금 조성 등은 아직도 회자되는 초대형 사건이었다.

이후 그럭저럭 사태를 수습했지만, 대우조선해양 역시 세계적인 조선업 불황의 여파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대우조선해양의 특성을 감안, 지난 1월 3일 대우조선해양 내 쇄빙 LNG 운반선 건조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거제 지역경제가 살아날 조짐

2018년 들어 대우조선해양은 유럽 및 미주 선주들로부터 LNG운반선 8척,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10척, 특수선 1척 등 총 19척 23억6천만 달러 규모의 신규 수주를 확보했다. 이는 올해 수주 목표인 73억 달러의 32.3%에 해당한다.

특히 미주 선주로부터 수주 받은 초대형원유운반선(길이 336m x 폭 60m) 2척의 경우,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가 매긴 평균 가격 8,600만 달러보다 비싼 가격에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해 총 10척의 초대형원유운반선이 모두 동일한 설계 사양이라서 수익성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2018.01.03) (사진:뉴시스)
대우조선해양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2018.01.03) (사진:뉴시스)

거기에 더해서, 중국으로 발길을 돌렸던 대한해운(대표이사 김용완)이 대우조선해양에 초대형원유운반선 2척을 발주한 것도 거제 지역경제의 회생을 도울 호재로 꼽힌다. 삼성중공업 조선소도 아시아 지역 선주로부터 12,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 한 관계자는 “올해 들어 선박 수주가 비교적 원활하고, LNG운반선 같은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여 거제의 지역경제가 생각보다 빨리 회복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 4월 고용위기지역 지자체 대상 관계기관회의에 참석한 박명균 거제시장 권한대행은, “정부가 1조 원의 추경예산으로 고용위기지역의 실직자, 지역기업 및 협력업체, 소상공인 등을 위한 자금을 직접 지원할 예정이다.”며 “특히 목적예비비 2,500억 원이 편성되어 있어 단순 계산으로도 적어도 수백억 원 이상이 우리 시에 직접 지원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클락슨 리서치 등 전문기관도 세계 조선업의 회복을 점치고 있고,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실적도 개선되고 있는 만큼 내년 이후에는 어느 정도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지난 3일 LG경제연구원의 ‘2018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가 내놓은 "세계 경기는 미국 주도의 성장 흐름을 당분간 지속할 예정"이라는 전망 또한 국내 조선업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다소나마 높여준다. 옥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대상으로 첫 승리를 일궈낸 곳이다.  패전의 기운이 가득할 때 충무공이 반전의 기회를 옥포대전에서 잡은 것이다.  역사 속에 옥포는 과거나 현재나 거제시와 대한민국의 명줄일수 있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 중인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및 컨테이너 선박들 ⓒ스트레이트뉴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 중인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및 컨테이너 선박들 ⓒ스트레이트뉴스

진행은 더디지만 거제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될 현안들도 있다. 경북 김천과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 건설사업, ‘동서남해안 및 내륙권 발전 특별법’에 따라 남해안관광벨트사업에 포함된 강원도-거제 장목 국도5호선의 통영 연장, 학동 케이블카사업, 사곡만해양플랜트국가산단 등이 그런 현안들이다.

옥포 인근에서 15년째 해물탕 식당을 운영 중이라는 류선자 씨(62)는, 향후 거제 경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싫지 않는 표정으로 답했다.

“진짜로 어려웠던 게 한 3년쯤 됐지 예. 장평동은 아직도 어려운 거 같지만, 이쪽은 작년보다 손님도 늘어나고, 인자 쪼매 살아나는 거 같아 예. 정부가 잘 좀 해가꼬 우짜든지 살아나야 안 되겠능교. 그치예?”

트럼프 발 보호무역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어 향후 세계경기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1분기에 3%로 깜짝 성장을 구가한 한국경제의 앞길도 순탄치는 않다. 여야의 드루킹 특검 힘겨루기로 국회가 공전 중이라 추경안이 언제 타결될지도 불투명하다. 

다행히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단식 농성을 풀고 국회로 복귀했다. 고용절벽을 헤아리는 민생 국회로 돌아간 것이었다면 뒤늦게 ‘철들었다’며 반색, 표를 몰아줄 분위기가 거제의 밑바닥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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