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게 이성이 있을까? 인본주의 함정
철학 오류, 희노애락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냐 
동물학대는 인간학대로 이어지는 반사회 범죄
민법 제98조 개정은 인간의 권리를 위한 노력

#. 이웃집 개가 짖는다는 이유로 돌로 내리친 뒤 전깃줄로 목을 졸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탕까지 만들어 먹은 사람. 고양이를 목줄에 매달아놓고 실실 웃어가며 마구 때리는 사람. 선물 받은 햄스터를 잔혹하게 죽이는 영상을 카카오톡에 올리는 학생...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동물학대로 난리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생후 1년 된 고양이에게 마약류인 엑스터시를 먹인 캐나다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를 죽여서 새끼 독수리들에게 먹인 미국인도 있다. 며칠 전에는 중동지역으로 향하는 호주 화물선에서 양들이 40도가 넘는 온도를 견디다 못해 참혹하게 죽어가는 영상이 공개돼 세계적인 비난이 일기도 했다. 

동물학대 사건이 수시로 발생하는 배경에는 인간 중심적 사고인 ‘인본주의(Humanism)’가 자리하고 있다. 인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잡초는 겁도 없다. 인간에 의해 뽑힐 줄도 모르고 거기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오수를 방해하는 파리는 죽여도 시원치 않다. 조물주는 왜 파리 따위를 만들어서 귀찮게 하는 거야? 고양이와 개는 살아 있는 인형일 뿐이고, 어쩌면 한 끼 식사로 변해 버릴 수도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무엇이든 마음껏 소유한 뒤에 처분할 권리가 있다. 이런 인본주의 사상은 가장 많은 신도를 자랑하는 천주교 및 개신교의 경전인 성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 -창1:28(NIV)-

철학의 실패 : 동물에 대한 동물적인 사고

사육이 시작된 후, 인간에게 동물은 그저 재산일 뿐이었다. 이는 인본주의로 무장한 철학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동물은 이성이 없다. 따라서 인간은 동물을 지배할 수 있다.” -스토아철학-

선거철마다 이슈로 부각되는 영국의 사냥산업(자료: 영국 메트로 Metro.uk)
선거철마다 이슈로 부각되는 영국의 사냥산업(자료: 영국 메트로 Metro.uk)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철학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방법적 회의’로 철학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데카르트마저도 동물을 ‘조금 복잡한 기계’ 정도로 취급했을 정도다.

“생체실험을 할 때 동물이 내는 비명은 망치로 무엇인가를 내리칠 때 나는 소리와 같다.” -데카르트-

정말 그럴까? 정말로 동물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존재일까?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이 내린 답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통해 인간을 동물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보자.

호흡하고 헤엄치고 뛰어다니고 체온을 조절하는 것과 같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기억은 근원의 기억이라서 뇌의 가장 깊숙한 부위인 뇌간(brain stem)에 저장되어 있다. 그 위를 번식, 감정과 관계되는 기억들(limbic system)이 덮고 있으며, 언어와 논리적인 사고에 대한 기억은 가장 늦게 발달한 탓에 주로 뇌의 바깥 부위인 대뇌 신피질(neo-cortex)에 자리하고 있다.

사랑을 예로 들면,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다르다. 번식 상대가 나타나면 뇌를 가진 모든 동물의 대뇌 변연계에서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엔돌핀과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성충동을 경험한다. 인간은 호르몬이 분비되는 이 과정을 ‘사랑’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하지만 생명 본능의 관점에서 보면 그저 ‘번식 본능의 발현’일 뿐이다.

죽어가는 동료의 호흡을 돕는 돌고래(자료:유튜브 화면 캡처) ⓒ스트레이트뉴스
죽어가는 동료의 호흡을 돕는 돌고래(자료:유튜브 화면 캡처) ⓒ스트레이트뉴스

따라서 시인들이 갖가지 논리적인 사고와 언어를 동원해 인간 고유의 그 무엇이라 노래하는 사랑은, 사실 상대가 가진 번식 능력에 성충동으로 반응하는 본능의 메커니즘이며, 일종의 단기 중독현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동물에게도 사랑이 있느냐는 질문에, 본능의 관점에서 “당연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길고양이 수컷이 뒷다리가 잘린 암컷과 함께 다니고, 반려견이 주인의 얼굴을 핥거나 주인이 사라지면 분리불안으로 인해 하울링(howling) 현상을 보이고, 돌고래가 죽어가는 동료를 물 밖으로 밀어 올리며 마지막 호흡을 돕는 것에서, 시인들이 인간 고유의 사랑이라 말하는 그 무엇을 동물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진화심리학은 뇌과학과 신경생물학 분야가 성취해 낸 결과들을 토대로 숭고한 정신의 정점에 앉아 있던 인간의 사랑을 동물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고통 역시 위와 유사한 과정에 의한 반응이며, 모든 동물이 느끼는 감각이다. 고통을 담당하는 기관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기억이 쌓여 있는 뇌간이다. 뇌간은 심지어 극심한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명령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기작은 인간뿐 아니라 뇌를 가진 모든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고통을 경험한 동물은 유사한 상황에 놓이면 두려움(포비아), 공격성과 같은 트라우마 반응을 보이고, 심할 경우 구토와 설사, 식욕부진 증상까지 보일 수 있다. 고통의 측면에서도 동물과 인간 사이에 다른 점은 없다.

주인 데이비드 로위David Lowe(33)로부터 학대를 받은 암컷 반려견, 플라이Fly(자료:dailystar)
주인 데이비드 로위(David Lowe)(33)로부터 학대를 받은 암컷 반려견, 플라이(자료: 데일리스타)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다. “동물이 비록 인간과 유사한 뇌 구조를 갖고 있다 해도, 개나 고양이가 되어 보지 않는 이상 놈들이 고통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려면 인간이란 동물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없는 ‘비이성적’ 존재일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과학의 진보와 인본주의의 횡포

다행스럽게도 동물에 무신경했던 인본주의는 몇몇 선각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정되어왔다.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는 동물이 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감성을 갖고 있고, 따라서 인간은 동물의 감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 역시 공리적인 차원에서 동물의 고통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물의 고통에 대한 이들의 언급은 어디까지나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1859년, 그런 생각을 획기적으로 뒤집어놓는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종의 기원>의 저자, 바로 찰스 다윈이었다.

다윈의 견해에 의하면, 뇌를 가진 모든 동물은 발달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동물에게도 이성 또는 이성이라 생각될 수 있는 그 무엇 또는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찰스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인본주의 해체 작업은 오늘날 동물들의 이익을 인간과 동등하게 보려는 ‘동물복지론’ 및 ‘동물권리론’으로까지 발전해 있다.

인간의 뇌 구조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인간의 뇌 구조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그러나 세계적인 학자 다윈을 낳은 영국의 동물보호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한 법안과 관련된 투표에서, 보수 정당인 토리당이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항목에 투표한 것. 이들은 투표 후 동물들에게는 감정이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들이 다윈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편 이유는 화장품 개발에 동물 실험을 적용하고, 사냥산업, 특히 여우사냥을 전국적으로 재도입하기 위해서였다. 마치 총기사고만 났다 하면 현지로 달려가 “안전을 위해 더더욱 총기가 필요하다”며 외쳐대는 전미총기협회를 보는 듯하다. 동물들은 생명을 두고 벌이는 인본주의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동물학대, 인간으로 전이되는 ‘반사회 범죄’

동물학대의 대상은 동물에만 그치지 않는다. 딸의 친구를 성폭행한 다음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자신이 기르던 개 여섯 마리를 망치로 때려죽인 전력이 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유영철, 안산 토막살인 용의자 조성호 등도 동물학대 전력이 있다.

두 달여 전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플로리다 고등학교 총기난사사건의 범인 니콜라스 크루즈(19)와 지난해 11월 텍사스의 한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신도 27명의 목숨을 앗아간 데빈 켈리(26)도 동물들을 총으로 쏴 죽인 전력이 있다.

동물학대는 인간학대로 모습을 바꾼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연구팀은 아동 성추행범 중 30%, 가정폭력범 중 36%, 살인범 중 45%가 동물학대 전력이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동물보호단체인 포포스(Four Paws)에 따르면, 학대받는 아동 중 무려 80%가 동물을 학대한 경험이 있고, 그중 약 65%는 부모들의 동물학대를 경험했다. 폭력적인 부모의 동물학대가 아동학대를 거쳐 아동에 의한 동물학대 및 타인학대로 전이되는 악순환의 출발점인 것이다.

동물 킬러에서 인간 킬러로 발전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자료:뉴시스)
동물 킬러에서 인간 킬러로 발전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자료:뉴시스)

동물학대는 생명에 대한 감각을 둔하게 만들면서 차츰 더 강한 학대 대상을 찾도록 부추긴다. 그런 점에서 동물학대는 아동, 아내, 부모 등 약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중범죄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영학의 사례만 보더라도, 학대 대상이 반려견에서 딸로, 아내로, 또 딸의 친구로 차츰 전이되지 않았던가. 동물학대를 동물에 대해 발생한 범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잠재적 중범죄의 사전 단계로 보고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동물 아닌 인간 위한 법 개정 요구

미국은 지난 2016년부터 동물학대를 반사회범죄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대만은 학대범의 이름과 사진, 범죄사실 등을 공개한다. 스위스의 통상적인 처벌 수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이지만, 학대범이 소유한 재산과 죄질의 정도에 따라 최대 11억5,000만 원까지 부과할 수 있다.

반려동물 산업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급성장한 우리의 사정은 어떨까? 2012년 이후 동물학대 등 동물보호법 위반 건수가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처벌 수위는 매우 낮다.

동물보호법 위반 건수(자료:법무부)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동물보호법 위반 건수(자료:법무부)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일예로, 2015년 길고양이 600여 마리를 포획해 건강원에 팔아넘긴 학대범은 고작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처분 받았을 뿐이며, 고양이에게 끓는 물을 붓고 뜨거운 쇠꼬챙이로 찔러 죽인 학대범 역시 집행유예를 받는 데 그쳤다.

이런 실정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3월 22일, 처벌 수위가 강화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기존의 내용에 더해서 △신고제인 반려동물 생산업의 허가제 전환, △뜬장 설치 금지, △출산 주기 8개월 보장 △동물 판매 또는 죽일 목적의 포획 금지 △다른 동물과 싸우게 하는 행위 금지 △혹한, 혹서 방치 금지 등이 추가됐다. 처벌도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두 배 강화되었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328명인 전국의 동물보호감시원 수를 늘리는 방안과 동물학대범을 전문으로 단속, 수사하는 ‘동물경찰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개정된 동물보호법 시행령도, 동물경찰제도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핵심 원인을 비켜난 대책이라서 그렇다. 핵심 원인은 우리 민법 제98조에서 찾을 수 있다.

제98조(물건의 정의)
본법에서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

이 법에 따라 동물은 공간을 차지하는 유체물, 즉 ‘물건’으로 분류된다. 당연히 개인의 재산이라서, 설사 타인의 반려동물을 죽인다 해도 살생이 아닌 재물손괴에 해당하며, 교환가치만큼의 손해만 배상하면 된다.

독일의 경우, 동물의 존엄성과 국가의 보호 의무가 아예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의 반려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면 주인이 입은 정신적, 감정적 피해보상까지 요구할 수 있다. 현재 적지 않은 국가들도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보는 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

‘반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나 동무’다. ‘가까이 두고 귀여워한다’는 ‘애완’에 소유의 개념이 있다면, ‘반려’에는 ‘동행’의 의미가 있다. 동행은 행복과 아픔을 공유하고, 동행이 사라지면 슬픔과 고통이 찾아온다.

반려견과 반려묘(자료:animalonline)
반려견과 반려묘(자료: animalonline)

반려동물 천만시대다. 제아무리 벌금을 올린다 해도, 제아무리 동물경찰보다 더한 동물특공대나 동물특전사를 꾸린다 해도,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인본주의적 생명경시사상이 법에 명시되어 있는 한, 동물은 ‘개값’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없고, 동물을 동행으로 여기는 천만 세대의 고통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햄스터를 거리낌 없이 죽이는 아이가 커서 길고양이를 죽일 과학적 개연성이 65%나 된다지 않는가. 길고양이를 죽일 수 있는 성인이라면 최소 30%는 성추행을, 36%는 가정폭력을 저지를 개연성이 있다. 살인을 저지를 개연성은 무려 45%다. 동물학대를 동물학대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 그리고 법 개정이라는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의 모든 새와 물고기와 육축을 다스리는 권리에는 합당한 의무가 따라야 한다. 권리만 챙기면서 의무에는 태만으로 일관한다면, 이유 없이 죽어가는 동물들이 가해 인간에게 남기는 원한으로 인해, 언젠가는 내 가족이 ‘이유 없는 살인’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민법 제98조 개정은 인간의 권리를 위한 노력이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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