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두 번 울려...형법 중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여론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성폭력 피해 공론화를 위축시키는 현행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성폭력 피해 공론화를 위축시키는 현행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시스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성폭력 피해 공론화를 위축시키는 현행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시스

우리 형법에는 사실을 공개해도 명예훼손이 성립된다는 형법 제307조 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재한다. 이 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피해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가해자가 명예훼손을 주장하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해당 법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가 있다. 이미 당한 성폭력 피해로 심신이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가해자가 건 명예훼손 소송으로 인해 또 다시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성폭력이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이 때문에 피해자에게는 권력자와 법정 싸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길게는 몇 년, 적어도 1년은 걸리는데 그 동안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너무나도 심각하다"며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느라고 3년, 5년씩 걸린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성폭력 사건에 있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악의적으로 사용되고 피해자의 입을 막는 측면이 있기에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현행법으로도 미투 운동처럼 폭로를 통해 얻어지는 공공의 이익이 분명한 경우 법원은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맞소송을 제기할까 두려워 고발을 주저할 수 있는 만큼 이 부분을 적극 알리고 법 개정도 추진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도 형법상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하고 선진국처럼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방향으로 사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개업회원 1944명을 대상으로 2016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달하는 970명(49.9%)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현행대로 형사처벌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46명(33.23%)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한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것 만으로도 행위자에 대한 책임 추궁은 충분하다고 본다"며 "형사책임을 추궁하는 동기도 대체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한 증거수집의 목적인 경우가 많아 형사처벌은 불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성폭력 등 범죄피해자의 증언을 위축시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적용범위를 축소하는 미투 피해자 보호를 위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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