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제조 2025 vs 팜벨트(Farm Belt)
'치킨게임' 미중 간 무역전쟁 예측불허
중간재 원산지 대책 서둘러 마련해야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미무역대표부(USTR)가 50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관세 부과를 예고하자, 중국은 즉시 3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예고하며 대응했다.

그러자 미국은 수입 철강 관세 부과를 발효시켰고, 중국 상무부는 미국산 돈육과 과일 등 128개 품목에 관세를 부과했다. 다시 미국은 1,300개 품목에 총 500억 달러 규모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으며, 중국도 미국산 대두와 자동차, 항공기 등 106개 품목에 500억 달러 규모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무역전쟁 연막 피우기에 돌입한 G2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무역전쟁 연막 피우기에 돌입한 G2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중국제조 2025 vs 팜벨트(Farm Belt)

양국의 무역전쟁 ‘연막 피우기’가 핑퐁게임을 방불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명분은 지적재산권(연 최소 2,000억 달러)과 같은 불공정 무역행위를 포함해 연간 5,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중국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것이다.

미국의 직접적 타격 대상은 시진핑 주석의 10대 핵심산업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제조 2025’이다. 중국제조 2025는 10대 전략산업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효율 제고 및 환경오염 개선 등을 통해 세계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장기 프로젝트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4일자 기사를 통해 “미국의 관세 목록이 노리는 것은 중국이 우위를 점하려는 기술”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몰려 있는 중서부 농장지대(Farm Belt)를 겨냥하며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대두의 최대 수입국(3,200여 톤/년)이다. 지난해에는 무려 140억 달러어치나 수입했다. 이외에도 이번 보복조치에는 미국이 지난해 중국에 100억 달러어치를 수출했던 자동차, 그리고 항공기(160억 달러)와 산업용 제품(300억 달러) 등이 포함됐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장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간다면,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는 신발과 의류, 장난감 같은 생필품 시장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돌이키기 어려운 국면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중국 기업이 미국의 정부 조달시장에 진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IMF의 환율 압박과도 맞서야 한다.

미국이 실제로 이 두 가지 카드를 뽑아 든다면, 중국은 보유 중인 1천2백조 원의 미국 국채를 팔겠다며 으름장을 놓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세계 무역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시장은 양국의 기싸움에 벌써 출렁이고 있다.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원유의 가격은 곤두박질치고, 안전자산인 금의 가격은 1% 가까이 상승했다. 4일, 뉴욕 증시와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개장하자마자 낙폭을 키웠다.

미중 기싸움에 따른 시장의 반응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미중 기싸움에 따른 시장의 반응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무역전쟁, 일촉즉발이라고? 글쎄...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쉽게 이길 수 있다(Trade wars are good and easy to win).” -트럼프 대통령-

“미국이 어떤 무역보호주의 조치를 취한다 해도, 중국은 맞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중국 상무부 가오펑(高峰) 대변인-

“보호주의는 개방의 문을 닫는 것과 같아 반드시 쓴맛을 보게 될 것이다.”
-중국 외교부 겅솽((耿爽) 대변인-

양측의 설전이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양국의 선전포고가 실제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중국은 보복관세 발효시기를 추후로 미뤘고, 미국은 30일의 의견수렴과 공청회(5월 15일), 청문회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양국이 무역전쟁으로 치닫는 현실에 장애가 될 전망이다. 한 국가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다른 국가에 보복하려 할 때, 대상 국가의 수출업자뿐 아니라,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의 소비자와 수입 산업 역시 고통을 겪는다.

중국은 미국의 세 번째 수출시장이다. 지난해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5,050억 달러 중 절반가량은 휴대폰, 신발, 의류, 장난감, 가구 등 가정용 필수품이었다. 만약 미국 정부가 이 아이템들에 보복관세를 매긴다면, 중국의 수출업자뿐 아니라 미국의 수천만 가구 역시 늘어난 생활비로 고통 받을 것이다. 컴퓨터나 산업장비 등 다른 주요 분야에 매기는 고율의 보복관세 역시 미국 기업들의 비용 인상 및 경쟁력 하락을 부추길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이 미국 국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일본, 영국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미국 국채 보유국이 된 배경에는 중국의 국내 저축이 총 투자를 초과한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 현황(2014-2017)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 현황(2014-2017)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예를 들어, 중국이 총 투자를 초과한 잉여 저축분으로 미국 국채 TMUBMUSD10Y, -0.72%를 매입하지 않는다면, 미 연방정부는 군수 관련 차입 비용을 줄일 수 없다. 더군다나 중국이 이미 매입해 두었던 미국 국채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한다면, 그 부담은 미 연방정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중국 역시 미국 수출이 어려워지면 ‘중국제조 2025’라는 기술굴기를 비롯, 각종 ‘굴기’에 적잖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산업구조는 물론, 인민들의 일상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일예로, 미국으로부터 들여오는 대두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국은 지구 어디에서도 대체 수입국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인민들의 생활이 피해의 직접적인 영향권 하에 놓인다.

적자 계산의 복병, 중간재

조지메이슨대(George Mason University) 다니엘 그리스월드(Daniel Griswold) 수석 연구책임자는 서비스교역 문제와 원산지 문제가 미중 간 적자를 줄이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미국 상무부 자료에 의하면, 미국이 중국 서비스교역 부문에서 거둔 수익은 2015년 590억 달러, 2016년 400억 달러였다. 향후 중국과의 협상에서 부가가치가 낮은 상품보다는 서비스교역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그는 아이폰을 예로 들면서 미국 정부의 무역회계시스템을 지적한다. 아이폰은 중국에서 최종 조립되지만, 부품 중 상당수는 일본산, 한국산, 그리고 미국산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무역회계시스템은 아이폰 전체를 중국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각 부품의 원산지를 정확히 반영한다면 양국의 무역적자가 40%가량 낮아진다는 것이다.

중국 헤난성(Henan Province) 소재 휴대폰 스크린 조립 공장 ⓒen.people.cn
중국 헤난성(Henan Province) 소재 휴대폰 스크린 조립 공장 ⓒen.people.cn

미국 정부가 이 주장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한국은 그야말로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될 판이다. 향후 모든 자유무역협정(FTA) 테이블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4일, 현대경제연구원은 만약 미국이 중국산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 중국의 대미 수출량이 10% 줄어들 경우, 한국의 대중국 수출 역시 연간 282억6000만 달러(30조4900억 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보복관세의 현실화를 염두에 둔 이런 예상은 조족지혈이다.

만약 미국이 다니엘 그리스월드 수석 연구책임자의 권유대로 중간재의 원산지를 규정하려 든다면, 한국의 중간재 수출시장은 엄청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한국에서 생산된 전체 중간재 중 무려 78.9%가 중국으로 수출되었으며, 금액만 해도 1,121억 달러(약 119조 원)이었기 때문이다.

무역전쟁을 두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에만 몰두할 때가 아니다. 고율의 보복관세로 인해 당장 한국이 입을 수출 손실이 30조 원이니 얼마니 하면서 걱정만 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각국 간 및 각 경제 블록 간에 점점 심화되는 교역 여건, 그리고 보호무역주의로의 유혹은 보다 합리적이고 꼼꼼한 계산을 요구할 것이고, 중간재의 원산지 규정은 당장이라도 각국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서 그렇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초래할 대중 수출 감소 규모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유관기관 및 업계 관계자들, 그리고 연구자들은 지금이라도 미중 양국뿐 아니라, 향후 모든 수입국이 모든 수출국의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중간재의 원산지를 따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