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휴식은 잘못되었다.

피로를 호소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겪고 있는 피로는 육체적 피로가 아니다.

근본적인 곳, 바로 뇌의 피로다.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을 살펴보면 정말 살풍경하다.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승객의 절반이 자거나 졸고 있다 축 늘어진 어깨를 보면 보이지 않은 무거운 짐을 하나씩 얹고 있는 듯하다. 저렇게 피로에 지친 몸으로 오늘 하루 어떻게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해낼지, 아니 무사히 넘길지 걱정스럽다. 한국 사회가 왜 이리 피로에 쩌들었을까?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밤낮없이 죽이라 달려왔다. OECD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에 휴일도 없는 강행군을 반복했다. 덕분에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초고속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고속 성장에는 어두운 이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마치 우물쭈물하다가는 박물관에 박제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품고 있는 듯 모두가 달렸다. ‘빨리빨리 문화‘는 이런 시대적·사회적 배경에 따라 자연발생으로 생겨난 한국 사회 특유의 부산물인 셈이다

업무 시간도 부족해서 야근을 일삼고 긴장 상태를 만드는 고감신경-심장을 강하고 빠르게 수축시키고 혈관 수축, 동공 확대 등의 작용을 하는 신경-위주의 생활이 이어지면서 스트레스가 홍수처럼 우리를 덮쳤다.

몸이 이러할진대 뇌는 어떠하랴. 잠시도 쉬지 않고 사회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추느라 우리의 뇌는 피로에 찌들어 있다. 특히 새롭게 등장한 IT 기기를 통해 하루 종일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각종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뇌는 완전히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그로기상태로 몰린 지 오래다

뇌에 적색경보 울리다

한국사회에서 뇌의 피로를 높이는 몇몇 요인이 있다. 먼저 나이에 따른 위기감'이다. 나이에 따라 피로를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특히 중년에 접어들면 뇌 피로도가 더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카를 융은 인생의 전환기인 마흔 즈음을 ‘인생의 정오’라고 명명했다. 실제로 우리는 마흔 즈음, 인생의 전반기를 되돌아보며 인생의 후반기를 신중하게 계획한다. 이때 현실과의 갈등이나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발달 심리학에는 이 시기에 겪는 각종 위기를 ‘중년기의 위기‘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한다.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위기와 갱년기라는 생리적 변화까지 겹쳐 뇌의 피로도가 현저히 높아지는 시기다.

둘째는 직업 스트레스다. 직업에 따라 뇌 피로의 정도가 달라진다. 그동안 선마을 방문자들을 조사해 보니 교사와 공무원, 간호사. IT 업계 직업군이 유독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중에서도 현재 250개 중학교에서 실행 중인 '세로토닌 드럼클럽‘ 덕분에 교사들을 면밀히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교사들의 뇌 피로는 심히 걱정스러웠다. 학과지도는 물론이고, 학부모의 압력,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정말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가장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날마다 전쟁잉어서 뇌 피로가 극심했다.

셋째는 급격한 사회 변화'다. 저출산과 인구 절벽, 초고령 사회 진입, 핵가족을 넘어서 1인 가구화 둥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사회 변화에 우리는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이처럼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겪는 뇌 피로 역시 주목할 만하다. 최근 뉴스를 보면 ‘고독사’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1인 가구가 520만에 육박하는 오늘날 혼자 살다가 혼자 죽어가는 고독사가 드물지 않은 현상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인간의 원초적인 군집 본능이 결핍된 고독회로 접어들고 있다.

넷째는 국제화 스트레스다. 국제화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전 세계적 흐름이다. 그만큼 국제화에는 수많은 스트레스가 수반된다. 가령 영어 콤플렉스가 그렇다. 영어를 못하면 무능력하다는 인식, 실제로 영어 점수가 학교 성적뿐만 아니라 입사와 업무 능력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뇌 피로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날마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환경 변화, 안보, 외교, 무역 등 국제화에 수반된 전세계적 문제들 역시 우리의 뇌를 피로하게 하는 윈인이다.

이처럼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의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뇌가 예민하거나 취약한 사람은 이런 사회 환경에서 온전할 수가 없다. 마치 적색경보가 울리듯, 지금 우리 뇌에서는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다.

이시형 박사가 뇌 피로 예방과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 신간,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
이시형 박사가 뇌 피로 예방과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 신간,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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