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트럼프 일방 선언의 '무역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그 전쟁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통화전(currency war)'으로 총성없는 전쟁이기도 하다. 

막말과 기행으로 세계인의 눈과 귀를 주목시킨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올들어 칼을 사납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노련한 칼잡이가 아니다. 어쩌다 전가의 보도를 손에 쥐게 된 초보 칼잡이이다.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엄청난 거인이 무지막지하게 큰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된다. 그런데 칼이 바뀌었다. 1990년대에 동남아 신흥국의 목을 겨누었던 칼은 '자유무역의 칼'이었다. 지금 트럼프가 휘두르는 칼은 '보호무역의 칼'이다.

트럼프는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6일(현지 시각)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을 규제하는 몇 가지 방안을 발표했다. 그 하나가 중국, 한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 베트남 등 12개 국가의 철강 제품에 53%의 관세폭탄을 때리는 방안이다.

사실상 수입금지와 다를 게 없는 강력한 조치다. 일본, 대만, 캐나다, 멕시코, 독일, 영국 등은 공격 대상에서 빠졌다. 일본은 미국의 충복이니 앞으로도 건드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주적은 다름아닌 중국이다. 한국은 중국과 워낙 교역이 많다 보니 옆에 있다가 한 묶음으로 두드려 맞는 형국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국이 똘마니들을 이끌고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본과 한국의 극우세력을 제외하면, 트럼프는 세계적으로 완벽한 왕따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뉴시스>
▲ 트럼프는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그 전쟁은 약달러 기조를 유지, 세계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수박에 없다. @뉴시스

미국은 지난 1월 말에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수입품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결정했다.  세이프가드(safeguard)는 미국 통상법 201조에 따른 긴급수입제한 조치다. 중국과 한국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생겼다. 한미 간에는 관세장벽을 없애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어 있다. 

◆ 미국 달러 약세기조…한국 대기업 하청·노동자 쥐어짜기

그런데 왜 한국 정부는 FTA를 이용하지 않을까? 한미 FTA 협정문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investor-state dispute)에 따르면, FTA 조항과 미국의 국내법이 부딪칠 경우 FTA 규약은 효력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의 국내법과 FTA 조항이 부딪치면 FTA 조항에 따라야 한다. 풀어 말하자면 한국은 꼭 지켜야 되고 미국은 안 지켜도 그만인 불공정조약이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에 항의하려면 한미FTA가 아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WTO라는 조직은, 사람으로 치면 뒷방 늙은이가 된 지 오래다.

유럽은 트럼프의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니 안도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요즘 유로존도 트럼프 때문에 죽을 맛이다. 지난달 독일 시사지 『슈피겔』에 실린 논평은 유럽의 상황을 제대로 표현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위험한 게임」이란 제목의 이 논평을 추수린다.

한·미 FTA 카우보이식 불공정조약

"미국은 안지켜도 그만"

미국, 약달러 기조는 '이웃 거지 만들기' 전략

세계 고금리→고물가→경제회복 찬물

“미국의 경제회복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지속적인 ‘약달러(weak dollar)’를 요구하고 있다. 그로 인해 겨우 살아나던 유럽 경제가 위기에 직면하였다. 지난 8개월 동안 미국달러화 가치는 10% 넘게 절하되었다. 1년 전 1유로에 1.10달러였던 달러/유로 환율은 1.24달러가 되었다. 독일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1.35달러까지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외국 바이어들은 독일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의 '이웃 거지 만들기(beggar-thy-neighbor)' 전략에 대응할 만한 뾰족한 수단이 없다. 달러 약세에 따라 유로화가 강해지면 독일과 프랑스도 힘들어지지만 특히 주변국들의 성장이 둔화된다. 독일과 세계 경제에 약달러보다 더 나쁜 것은, 트럼프의 위험한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결국 고금리가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슈피겔』지는 트럼프의 위험한 게임을 ‘불장난(playing with fire)’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들여다 보자.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단행한 조치는 부자감세다. 기존 35%였던 법인세를 21%로 내리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39.6%에서 37%로 인하했다. 1986년 레이건 행정부 이후 최대 규모의 감세다.

트럼프 행정부의 2018년도 예산은 총 4조 850억 달러. 주 정부와 지방 정부 예산까지 합치면 7조 달러가 넘는다. 국방비는 크게 늘리고 복지 예산과 교육 예산은 대폭 줄였다. 그리고 도로, 항만 등 인프라 투자를 확대했다. 트럼프의 공약의 연장선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작품이 아닌가?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 정부가 실행했던 정책 그대로다.

세금을 적게 거두고 재정지출을 늘리면 엄청난 재정적자가 발생한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당장 내년에 1조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재정적자가 커질수록 달러는 저렴해진다. 미국은 어차피 달러로 상품 대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달러가 저렴해지면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만 손해다. 『슈피겔』지가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보잉사에 비행기 부품을 납품하던 독일 회사는, "달러 값이 싸졌으니 부품 값을 올려 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다. 미국 기업은 갑이고 수출기업은 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달러 가치가 떨어졌다고 해서 미국에서 물건 값을 올려 받지 못한다. 대신에 국내 하청업자와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이윤을 확보하려 들게다.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과 다우존스지수 @슈피겔 지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과 다우존스지수 @슈피겔 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수입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 때문이다. 당장 중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값이 크게 올랐다. 그렇다고 미국의 제조업이 금세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제조업은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분야이고, 미국의 제조업 공동화로 인하여 실직한 기술자들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다. 과거에 유능한 숙련공이었다 해도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 환경에 적응할 수가 없다. 미국의 고용지표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새로 생긴 일자리는 대부분 파트타임과 같은 저임금 일자리다. 결국 미국의 소비자들은 미국의 제조업이 살아날 때까지 비싼 값에 외국 물건을 사야 한다. 최근의 유가 상승은 달러 약세와 관련이 있다. 기름 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달러 값이 싸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커질수록 달러가 저렴해지는 동시에 미국 국채 가격이 훅 떨어진다. 다시 말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금리(수익률)가 상승한다. 실제로 지난 2월 7일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트럼프의 장기예산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채 금리는 곧바로 급등세로 돌아섰습니다. 10년물 금리의 3% 진입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국채는 전 세계 모든 자산의 가격을 결정한다. 미국의 국채 금리가 상승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금리가 오른다는 뜻이다.

미 국채가격 하락 때

채권 금리 상승→세계 금리 인상→한국 가계부채 폭발  '후폭풍'
재정적자 유발 부자감세

달러 약세→대미 수출 악화→노동자·하청업체 고사

◆약달러-화염방사기라면 고금리는 얼음 제조기

다가올 3월에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한국은행도 따라 올리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올해 미 연준의 금리인상 횟수를 세 번으로 예상했던 전문가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어쩌면 네 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 되면 한국의 가계부채 폭탄이 매우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리가 올라가면 미국 정부의 금융부담도 커진다. 미국 정부의 부채 규모는 이미 20조 달러를 넘어섰다. 기업부채와 가계부채까지 합하면 미국은 2018년 2월 현재 총 69조 5천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정부 예산에서 지출되는 이자 비용만 2,800억 달러가 넘는다. 한국 돈으로 약 300조 원이다. 2018년도 한국 정부 예산 429조 원과 비교해 보면 대략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미국의 금리가 계속 오르면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의 금융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여기에 물가고까지 겹치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소비가 위축되면 미국 경제도 얼어붙는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소비가 떠받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약달러가 화염방사기라면 고금리는 얼음제조기다. 미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란 트럼프의 뇌구조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다.

트럼프가 무역전쟁의 선봉에 서서 대포를 쏘면 쏠수록 미국도 만신창이가 된다. 중국은 미국산 콩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겁을 주고 있으나 중국이 콩 수입을 중단하면 트럼프 지지층인 중서부 농민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물론 콩을 사료로 쓰는 중국의 축산 농가도 곤경에 빠질 것이다. 얼음판 위에서 불을 지펴야 하는 모순적 상황, 이것이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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