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도 바라는 KBS 정상화

 

박태순 미디어로드연구소장(미디어정치학 박사)
박태순 미디어로드연구소장(미디어정치학 박사)

지난 20일 오후 방송된 KBS1 ‘4시 뉴스집중’에 출연한 배우 정우성은 KBS 앵커가 근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에 대해 묻자 “KBS가 국민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빨리 되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유명 영화배우가 KBS의 뉴스 데스크에 초대되어 KBS의 정상화를 바란다는 거침없는 일설이 시민들을 놀라게 하면서 다시금 KBS문제를 생각토록 했다. 그럼에도 KBS 새노조는 100일을 훌쩍 넘기고 여전히 총파업 중이다. 

MBC <PD수첩>이 19일 '방송장악 10년, KBS를 지키러 왔습니다?'를 방송했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하에서 자행된 KBS 장악을 KBS 내부 깊숙이까지 들어가 파헤쳤다. 고대영 현 KBS 사장을 축으로 한 정치부 기자 50여 명이 회합을 갖고 정연주 전 사장을 몰아내려던 음모, 이명박 대선 언론 특보를 맡았던 김인규를 KBS 사장으로 내정하는 과정에서 고대영을 중심으로 한 KBS 구성원들이 정부에 먼저 싸인을 보낸 행태, 그리고 이사장이 자기의 역사관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비판하고 제진을 압박하는 행태 등은 권력에 취약한 KBS내부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2009년 용산 참사 축소·왜곡 보도, 노무현 전 대통령 망신주기 보도, 4대강 사업 미화 방송,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의도적 외면 등에서는 KBS가 얼마나 충실히 정권의 경비견 역할을 해왔는지를 보여주었다. 

성재호 KBS 새노조 위원장은 "KBS는 그 태생부터 지금까지 사실 권력에 매우 취약한 그런 어떤 전통, DNA 같은 게 있어요. 여전히 그 DNA는 바뀌지 않았다고 봐요. KBS의 DNA를 바꾸는 그 시작, 그 싸움의 시작은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정말 우리는 DNA를 바꾸는 싸움을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KBS의 DNA를 바꾸는 싸움, 그것은 공영방송,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는 싸움일 것이다.  

영국 BBC와 프랑스 France2의 사례

KBS가 자사 파업 문제를 취재하러 온 MBC<PD수첩> 제작진의 출입을 도왔다는 이유로 KBS새노조 조합원 3명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KBS 경영진은 여전히 자신들의 치부 감추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KBS가 직면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단초, 즉 DNA를 바꾸는 방향을 영국의 BBC와 프랑스의 France2 사례를 통해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3년 영국 BBC는 설립된 지 82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과장했다는 BBC 보도'의 진위를 조사했던 브라이언 허튼 대법관이 종합 보고서를 통해 이 기사를 오보로 규정했다. 이에 책임을 지고 개빈 데이비스 이사장과 그레그 다이크 사장 그리고 이 기사를 보도한 앤드루 길리건 기자가 사표를 냈다.

BBC는 2003년 5월 29일 미국과 영국 정부가 이라크 침공 명분으로 내세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이 과장돼있다는 의혹을 보도를 했다. BBC는 ‘익명의 취재원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보도한 것은 잘못이다’는 허튼의 주장은 내부 고발자를 통한 취재를 사실상 제한하며 따라서 언론자유를 침해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4천명의 BBC 방송의 앵커와 기자들은 다이크 사장을 지지하는 광고를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에 게재하였으며, 다이크 전 사장도 "토니 블레어 정부는 이라크 전쟁 보도와 관련해 BBC를 체계적으로 괴롭히고 위협해왔다"며 "지난해 3월 21일 이라크전 개전 때 정부가 BBC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으로 총리에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그는 총리 공보수석의 바그다드로부터 BBC기자의 철수 요구, 이라크전에 대해 BBC 보도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낸 일, 블레어가 BBC를 공격하는 사적 편지를 보낸 일 등 전방위적인 정권의 위협을 폭로하고 이에 맞섯다. 

2013년 3월 18일 BBC는 ‘세계를 바보로 만든 스파이들’이란 탐사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양국 정보당국의 암호명인 '커브볼'로 불리던 이라크 망명자들이 만들어낸 가짜 정보라고 알렸다. 물론 BBC 취재과정에 문제는 있었다. 취재원이었던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증언을 녹음이나 메모를 안 했고, 편성책임자도 원고 확인 없이 생방송을 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권력의 압력에 빌미가 될 수는 없다. 저널리즘을 지키기 위한 BBC의 희생에 전 언론인이 대응을 하고, 특히 사장이 앞장서 BBC를 지키고자 한 노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10년 후, BBC의 진실 보도는 밝혀졌다. 언론이 권력에 맞서 하나의 진실을 지키는데도 엄청난 희생과 시간이 요구되었음을 볼 수 있다.  

지난 12월 5일, 프랑스의 좌파당수 장 뤽 멜랑숑은 ‘저널리즘 직무윤리위원회’를 설치를 입법청원했다. 그는 여러 사례를 들면서 지난 대선 동안에 공영방송 France2가 마련한 “레미시옹 폴리티크(L'Émission politique)"가 마크롱을 나라의 지도자로 부각시키면서 지나치게 편중된 인터뷰를 했고 그로 인해 마크롱이 큰 수혜자 됐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민주적 시민생활을 지키고, 공공 토론을 조정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멜랑숑은 대부분 미디어와 언론들은 그 뒤에 거대 자본이나 공공서비스를 위한 정부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초대 받았던 2017 년 11 월 30 일 France2의 레미시옹 폴리티크(L'Émission politique)의 방송 사례를 들어서 정치적 사명은 뒤로하고 사실로 가장한 거짓으로 초대자의 관점을 공중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면서 오직 함정에 빠뜨리는 방송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시민들이 언론의 기만이나 거짓말, 윤리적 실수를 정정하도록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음을 강조했다. 물론 그의 주장에 대해 France2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언론 재판소를 만들려 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럼에도 저널리즘 직무윤리위원회 설립을 위한 청원자가 12월 22일 현재 16만 4600명을 넘었다. 

KBS의 DNA는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영국 BBC와 France2의 사례는 공영방송이 생태학적으로 갖춰야 할 DNA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먼저, 공영방송은 정치, 경제 등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돼야한다. 심지어 France2의 사례에서 보듯이 자신의 권력으로 부터도 독립돼야한다. 그리고 오직 사실과 진실을 시민에게 알리는 중간자적 DNA를 갖추고 시민권력, 국민주권의 보호하기 위한 소통자로의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공영방송 조직은 단일 유기체적 DNA를 갖춰야한다. 손가락이 아프면 머리까지 아프듯이 일선 기자가 고통을 받으면, 사장이 더 큰 고통을 느끼는 하나의 유기체, 오직 공공선을 목적으로 하나가 된 단일 유기체여야 한다. BBC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하나의 유기체가 될 수 있는 길은 조직 내 공감의 저널리즘 문화가 충만하고, 언론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넘쳐야한다. 공영방송 조직원 모두가 손석희가 될 때 공영방송은 모든 탄압과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직업윤리의 회복이다. KBS의 윤리강령이 단순히 벽에 걸린 장식물이 아니라 KBS 구성원 입에서 언제나 직무윤리에 관한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나와야 한다. 몇 년 전 내셔널지오그래피 기자와 이야기하는 중에 기업의 후원과 담합에 대해 질문했다. 그 기자가 주저하지 않고 직무윤리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답변함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KBS의 DNA는 바로 이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으로 부터도 자유로운 공영방송 KBS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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