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주홍글씨를 새기며 살아가게 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

비내리는 헌재[사진제공=뉴시스]

지난 주말 헌법재판소에서 5년 만에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에 대한 위헌여부 공개변론이 방청객으로 가득 찬 가운데 열렸다. 헌재는 2004년과 2011년 이미 두 차례 합헌 모두 7대 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위헌 결정을 위한 재판관 정족수는 6명, 헌재는 심리를 이어간 뒤, 이르면 올해 안에 3번째 결론을 내놓을 예정이다.

법원으로부터 ‘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병역법 88조 1항에 의해 통상적으로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거 받고 복역 중인 한국 내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가 600여명이나 된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이 숫자는 전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의 92%다.

지난 5월 12일,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해 기소된 3명에 대해 광주지방법원 최창석 판사가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과거 2004년과 2007년 1심 재판부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적이 있지만 대법원에서 결국 유죄 판결이 내려졌었다.

판사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제88조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꾸준히 제청하고 있다. 2007~2013년 8개 재판부가 헌재에 낸 제청문을 보면,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일반 병역기피자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배치된다는 점을 가장 먼저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총을 들 것이냐, 아니면 감옥에 갈 것이냐, 외에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인가.

23살의 한국인 청년 이예다 씨는 3년 째 파리에서 살고 있다. 그의 신분은 유학생도 여행객도 아닌 <난민>이다. 지난 2012년 프랑스에 여행객으로 입국한 이 씨는 다음날 바로 국제사회에 망명 신청을 했다. 당시 그가 밝힌 망명 사유는 병역 거부였다. 군에 입대해 총을 드는 대신 국가를 위해 봉사할 대체 복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프랑스로 건너와 자신의 양심을 지킬 결심을 한 것이다. 결국 2013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국제 난민이 된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이것을 권리로서 주장할 때 양심적 병역거부권, 양심적 집총거부권, 양심적 반전권(反戰權)이라 한다. 이에 관한 입법례를 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 ·이스라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헌법 또는 법률로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그 기본법 제4조 3항에서 ‘누구든지 양심에 반하여 집총·병역을 강제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에스파냐 ·포르투갈 ·폴란드 ·러시아 ·타이완 등에서는 법제화하고 있지는 않으나,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를 인정하는 근거는, 종교적 ·윤리적 확신에 따라 전쟁에 종사하는 것을 반대하는 자에게 병역을 강제한다면, 그것은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고 하는 데 있다.

오늘날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에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각국의 특수한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그 구체적인 내용에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① 양심적 병역거부의 근거가 종교적인 이유 이외에로 확대되어 가고 있고, ②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과연 진실로 양심에 따라 병역이나 집총을 거부하는 것인가의 여부를 심사하는 심사기관을 설치하고 있으며, ③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대체역무(代替役務)를 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전쟁없는세상> 등 시민단체들은 9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병역법 88조 1항 1호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으며,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이 1990년 국회 비준을 받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에 따라 보장받는 권리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자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인권 상황은 점점 더 후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는 모든 사람이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다. 이들은 이어 올해와 내년 유엔에서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의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한국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자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인데도 인권 상황은 점점 더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분열되거나 혼란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한국 사회가 한 걸음 더 진보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돌직구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와 공동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하여 10~11일 이틀간에 걸쳐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48.4%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한다는 40.0%, 모름/무응답은 11.6%로 조사되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기피수단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처럼 남북분단 상황 등 아직도 우리 정서가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하여 인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의 국민이 대체 복무에 찬성한다는 점에서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건강한 청년들을 감옥으로 보내 전과자를 만들어 평생을 힘들게 살게 하느니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될 수도 있다. 군복무만 면제해 준다면 국가가 현행 군 복무기간보다 더 길고, 또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어려운 일을 시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게 그들과 그 가족 대부분의 희망이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지도급인 인사들의 자녀는 희귀병, 이중국적 등으로 군대에 안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또 석연찮은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으면서도 장·차관은 물론 총리, 대통령까지 하고 그러는데 군대 대신 감옥행도 마다 않는 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지 않고 평생 주홍글씨를 새기며 살아가게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은 아닌가 싶다.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김상환(전 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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