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정통보수주의자의 길을 걷다

예상대로 유승민 원내대표가 스스로 직을 물러났지만 그의 인기는 수직 상승 중이다. 그는 사퇴의 변을 통해 헌법 제 1조 1항의 가치를 읊조리며 수직적 당청관계에 저항했다. 이에 따라 7월 8일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여권 내 차기대선지지도가 16.8%로 오차범위 이내에서 김무성 대표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동안 경쟁력이 있는 후보군에 목말라 있던 새누리당은 가뭄의 단 비를 만난 셈이다. 게다가 중도층 공략을 놓고 경쟁 중이던 야당에는 한 방을 크게 먹인 꼴이다. 유승민 의원은 지난 2월 원내대표 당선 직후부터 “법인세도 결코 성역이 아니다.”라며 부자 감세정책으로 일관해온 청와대와 각을 세워왔다.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다시 한 번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中부담 中복지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한 부자 증세, 법인세 인상, 중산층 증세 가능성” 등을 언급하였다. 또한 당의 노선에 관해서도 “지금까지의 새누리당은 경제성장과 자유 시장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 이제부터는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 서는 용감한 개혁,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새로운 노선으로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노선으로 가겠다.”라고 다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자본주의의 결함을 고치되 국가안보 만큼은 정통보수의 길을 확실하게 가겠다.”라며 진정한 보주주의자임을 숨기지 않았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기자회견을 하기위해 의원회관을 떠나고 있다. 오른쪽은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2015.07.08.[사진제공=뉴시스]

이처럼 보수와 진보를 통틀어 정치권에서 가치와 노선을 두고 갈등을 보이는 일은 드물다. 5년 전에도 여권 안에서 큰 균열이 발생했지만 정치노선 상의 문제는 아니었다. 2010년 6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세종시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었다. 평의원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명분으로 직접 반대토론에 나섰고, 친박계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손쉬운 부결을 이끌어 냈다. 이후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된 그는 야당의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까지 가로채기에 성공함으로써 34년 만에 청와대 관저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5년 전 그 사건은 하나의 정책 이슈를 사이에 두고 벌인 공방이었다. 그러나 2015년 현재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의 근본 노선에 대한 문제제기를 던진 당찬 보수주의자가 틀림없다.

 

제335회 국회(임시회) 본회의가 열린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2015.07.09.[사진제공=뉴시스]

새정치연합은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패배한 김한길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물러나자 사람들은 새정치연합의 정치노선 변화를 예상했다. 짧은 기간 재임했지만 이들의 중도층 공략에 대한 당내 불만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차기 대선주자인 문재인 대표 체제가 들어서자 새정치연합은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 분야까지 중도와 보수층 유권자를 겨냥한 집권 플랜을 곧바로 가동하기 시작한다. 김한길 안철수 체제에서 중도층 공략을 주창해온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은 그대로 유임되었고, 당의 유일한 이 씽크탱크에서는 연일 중도 공략보고서를 쏟아내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 2.8 전당대회 당시 이미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만족하는 만년 2등 야당이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유능한 경제정당을 만들겠다."라고 공약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그의 궁극적 목표는 ‘이기기 위한 정당’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 당선 이후 그의 ‘유능한 경제정당’ 행보는 시작부터가 사실상 대통령 후보로서의 발걸음이다. 그는 취임 직후 야당 대표로서는 5일 만에 이례적으로 대한상공회의소를 직행하였고 정례적인 소통 제안까지도 했다. 그가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를 찾은 것은 2012년 대통령 후보 시절 이래 처음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표의 친 재계 행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지난달 9일 현대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강의를 들었고, 1주일 뒤에는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경제연구소 임원들로부터 경제수업을 받은 바 있다. 그 후에도 현대차, LG 등 주요 재벌기업의 목소리를 차례로 경청하며 당의 ‘반 기업 이미지’ 해소를 위해 노력 중이다.

전직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 당직자 및 당원들로 구성된 국민희망시대 정진후 회장과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야권개편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하고 신당창당을 추진한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5.07.09.[사진제공=뉴시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는데, 새정치연합은 30일 당대표 직속기구인 ‘유능한 경제정당 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문 대표는 축사에서 4월 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미 한 차례 언급한 ‘소득주도성장론’이 ‘유능한 경제정당’의 거시적 방향임을 힘주어 강조했다. 다시 1주일 뒤 문 대표는 이 위원회의 1차 회의를 열어 ‘유능한 경제정당 전략’을 발표하는데, 이 날은 때 마침 국회법 재의안이 표결조차 가보지 못한 다음 날이었다. 이렇듯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2만명 가까운 국민들이 메르스와 직접 사투를 벌이며 그 중 30여명이 실제로 사망을 했는데도, 수많은 영세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되고 관광지와 공연장 등에는 인적이 뚝 끊겨 한 숨만 나오고 있는데도 제 1야당은 온통 집권엔진(유능한 경제정당 위원회) 성능 실험에만 여념이 없는 꼴이라니. 사실상 세월호특위 활동을 무산시키기 위하여 거부권이 행사되고 그 장단에 맞춰 합의 처리한 법안이 폐기됐는데도 한가로이 집권전략이나 논의하는 수준이라니. 한국은행은 7월 9일 금융통화위원회의를 열어 지난 4월에 발표한 금년도 경제성장률전망치 3.1%를 메르스 여파와 가뭄 때문에 2.8%로 낮춰 잡았다. 성장이 침체되면 죽어나가는 건 서민들뿐이다. 수백조원의 현금을 곳간에 쌓아놓은 재벌들과 부동산 부자들은 끄떡없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조차 없어서 최고의 실업률 속 청년들은 더 이상 내몰릴 곳도 없다. 통계청이 지난 1~5월 사이 공식적인 청년실업률을 10.1%라고 발표했지만 아르바이트 등의 불완전취업자, 취업준비생, 구직 포기자 등을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23~37% 쯤 된다는 분석이다. 숫자로 치면 150~200만명 규모이다. 이들을 두고 먼저 대한상공회의소를 찾는 야당 대표, 삼성경제연구소 특강을 듣는 야당의원들의 발상이 놀랍다. 국회 선진화법이라는 대단한 무기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부자 증세, 복지 확대 등 번번이 입법전쟁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제 1야당의 처지도 참 딱하기만 하다. 800만명 비정규직, 550만명 영세 자영업자 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표와 공동위원장인 정세균 의원,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오른쪽), 참석자들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대통령이 헌법과 당헌에도 없는 수직적 당청관계를 강요하고 국회를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 정도로 여겨도 야당이 새누리당 지지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7월 8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정당지지도가 좁혀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7.7% 차이로 새누리당이 앞선 상태이다.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의원 등 다수의 유력 대선 주자를 보유한 야당이 헤매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지지층의 견고한 지지가 뒷받침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시스 컨설팅(대표 김헌태) 창립 여론조사(5월 17일~18일)에서 ‘유능한 경제정당’이란 다름 아닌 ‘분배를 잘하는 정당’이 ‘성장을 잘하는 정당’보다 우세하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호남지역에서 56.5%가, 소득별로는 201~400만원 사이에서 53.3%가, 연령별로는 30대가 61.5%로 ‘분배를 잘하는 정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이라고 응답했다. 호남, 201~400만원 소득, 30대 연령은 야당의 핵심 지지층이다. 이들은 문재인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보다는 ‘분배론’, 즉 복지 확대에 더 큰 관심을 가진 계층이다. 그래서 최근 야당의 텃밭인 전북에서 실체도 없는 호남신당으로부터 가상대결에서 10% 이상 뒤지는 여론조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영어로 야당을 The opposition party라고 쓴다. Opposition은 바로 계획, 정책 등에 대한 반대가 내포되어 있는 단어이다. 따라서 여당과 대비되는 새로운 정책을 선뵘으로써 정권획득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야당이 서 있는 기반은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영세 농어민, 청년 실업자 등 서민들을 기본으로 중산층까지를 포괄한다. 따라서 ‘유능한 경제정당’과 같은 맹목적인 중도행보보다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이 기본이어야 한다. 유승민 의원의 말을 차용하자면 정통개혁야당의 길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이기는 정당’의 정도가 아닐까?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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