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아버지가 집안에서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며 화를 낸다.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화를 참지 못한 아버지는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이웃도, 아이의 상처를 확인한 의사도, 아이와 상담을 한 학교 선생님도 신고를 하지 않는다. 항상 애지중지하는 핸드폰에서 112만 꾹 눌러주면 아이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른 가정의 아이 훈육에 내가 뭔데 불쑥 끼어들어?"라는 생각과 "저 정도쯤이야 나도 하는데"라며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무관심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1989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돼 1991년 우리나라도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을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 주체로 명시하고 있다.

즉, 아동은 부모에 의해 양육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부모는 아동의 이러한 권리를 존중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다. 자칫 아동을 단순한 보호의 대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부모님들에게 인식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를 시도한다 해도 그것이 폭력이라면 이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어른들의 몫이다.

이러한 역할은 내 아이와 내 주변의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우리 아이'로 받아들여 아동학대를 발견한 경우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관심의 표현으로부터 시작된다.

지난해 9월29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 이후 크고 작은 아동학대사건이 이슈화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증가했다.

이와 함께 아동학대 신고번호를 '112'로 통합하면서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2013년 1만3076건에서 2014년 1만7791건으로 36% 정도 늘었다.

경찰은 더 많은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게 신고의 중요성과 신고방법 등을 홍보하고 신고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제도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법에 지정된 신고의무자들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다. 비록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지만, 건전한 상식과 책임 의식을 가진 이 나라의 어른들이다.

올해 초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으로 전 국민들이 경악하고 분노에 떨었던 적이 있다. 보육시설 내 아동학대에 대해 이렇듯 걱정하면서도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발생하는 가정 내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내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바라만 본다면 결코 아이들에게 떳떳한 어른, 당당한 부모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학대를 받는지도 모르는 '아이'나 '훈육'이라는 이름을 빌려 상습적으로 아이를 때리거나 방임하는 '학대행위자'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 신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아동학대 근절은 신고로부터 시작된다. 신고가 없다면 피해아동을 발견, 보호하는 국가의 개입 여지가 줄어든다.

아동을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고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학대를 남의 가정사로만 치부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주변의 아이들을 '우리 아이'라고 인식해 신고가 활성화 될 때 우리 사회는 '아동이 행복하고 안전한 정상화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 경찰청장 강신명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