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대표 'AI시대' 선언날 통신장애
KT "디도스 아닌 라우팅 오류로 장애"
잇단 통신장애에 구현모 탈통신 '제동'

KT 구현모 대표
KT 구현모 대표

KT가 구현모 대표 체제를 맞아 인공지능(AI)·빅데이터·미디어 등 탈통신 사업 강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본업인 통신사업에서 먹통사태가 벌어지면서 탈통신 행보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KT 인터넷 장애가 시작된 25일 오전 11시 20분께는 KT의 'AI(인공지능) 통화비서' 출시 기념 간담회가 끝난 시각이었다. KT는 25일 오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고객과 질의응답을 통해 문맥을 파악하는 'AI 능동복합대화'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 'AI 통화비서'를 소개했다.

구현모 KT 대표도 간담회에 영상으로 등장해 KT의 AI 사업 비전을 밝혔다.

구현모 대표는 "KT는 통신과 플랫폼을 통해 충분한 데이터를 갖고 있고, 많은 투자를 통해 AI 기술 역량을 굳건히 다져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24시간 고객 응대가 필요한 병원, 경찰서, 소방서 등을 포함해 언제 어디서나 AI를 통해 24시간 소통 가능한 'AI 통화비서'를 제공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AI를 쓰는 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간담회 종료와 함께 KT의 네트워크가 전국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겪었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사옥 모습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사옥 모습

KT, 인터넷 장애 이유 디도스->라우팅 오류로 정정

KT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설명을 정리해보면 25일 오전 11시 20분부터 오후 12시 45분까지 약 85분간 전국에서 인터넷 장애가 발생했다. KT는 처음에 인터넷 장애의 이유로 "초기 트래픽 과부하가 발생해 디도스(DDoS·악성코드를 이용한 서비스 거부)로 추정했다"라고 설명했으나 '라우팅 오류'(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로 정정했다.

라우팅이란 데이터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가도록 할지를 정하는 것이다. 코어망과 전송망, 액세스망 등 네트워크의 중앙부에서 가입자까지 경로를 어떻게 연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통신사들은 이런 목적에 맞게 네트워크 장비를 적절히 설정해 대규모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인터넷망이 원활하게 동작하도록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위로 라우팅 오류가 발생했는지 또 그로 인해 트래픽에 어떻게 문제가 생겼는지는 KT가 아직 밝히지 않고 있으며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라우팅 관련 설정치가 잘못 지정돼 트래픽이 특정 네트워크로 쏠리면서 과부하가 일어나고 전체 인터넷망의 장애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한 관련 업계의 추측이다.

체면 구긴 구현모 “책임 통감…보상방안 조속히 마련”

KT는 구현모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냈다.

구현모 대표는 26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과문에서 "어제 전국적으로 발생한 인터넷 장애로 불편을 겪으신 고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CEO로서 KT를 믿고 서비스를 사용해 주시는 고객님들께 장애로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심층적인 점검과 함께 프로세스를 보완하고, 아울러 이번 사고를 유무선 네트워크 통신망 전반을 면밀히 살피는 계기로 삼겠다"며 "조속하게 보상방안 또한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KT의 제2노조인 KT새노조는 경영진을 비판했다.

KT새노조는 "'휴먼 에러'(사람의 실수)로 전국 인터넷이 마비되는 사태를 보면 KT가 국가기간통신망 사업자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통신사업자로서의 기본을 충실히 하지 않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에만 집중하다 보니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장애"라고 주장했다.

이어 “라우팅 오류라면 휴먼에러(인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내부 의견”이라며 “단순 라우팅 오류로 전국 인터넷망이 마비될 정도라면 안정적인 운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KT 사과문
KT 사과문

통신장애 연발에 구현모 ‘탈통신 행보’ 제동걸릴듯

KT 내부의 비판과 함께 구현모 대표가 취임 직후부터 추진해온 탈통신 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구현모 대표는 통신사업을 근간으로 AI·빅데이터·미디어 등 통신사업이 아닌 신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구현모 대표는 ‘통신사(텔코)’가 아닌 '디지털 플랫폼기업(디지코)'으로의 전환 방침을 강조하며 포화상태에 이른 통신사업에서 신사업 발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신사업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본업인 통신사업을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국가기간통신 사업자인 KT의 지난해 설비투자(CAPEX) 규모는 총 2조 8720억 원으로 SK텔레콤·SK브로드밴드(3조 236억원)에 비해 1,500억 원 가량 적었다.

게다가 KT의 인터넷 먹통사태는 이번 만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KT 아현국 화재 때는 전국적으로 서비스 장애 지역이 더욱 넓었다. 당시에도 서울 중구, 용산구, 서대문 일대에 통신 장애가 빚어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KT와 구현모 대표의 탈통신 행보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업인 통신 사업에서 연달아 사고가 터지고 있는데 신사업 발굴에 나선다고 하면 업계 안팎에서 지적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에서도 이번 피해의 보상안을 요구하고 있어 당장 신사업에 힘을 싣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T는 28일로 예정됐던 KT스튜디오지니 기자간담회를 연기했다. KT스튜디오지니는 KT의 콘텐츠와 미디어 부문을 담당하는 자회사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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