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리지로 행복한 시간 끝…준비된 IB플레이어의 시간 온다

고착화된 저금리 시대의 솔루션 제공 회사가 주인공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코로나19가 공식화된 지 1년이 넘게 지났지만, 이를 극복하는데 당초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언택트’ 환경은 자산가치의 변화, 비이자수익 중요성 부각, 플랫폼을 무기로 한 테크핀 기업들의 대두 등으로 금융업 지형도를 극적으로 바꾸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창간 9주년을 맞아 변화의 시기에 경쟁력 재정비에 나선 금융업계를 되돌아보고 향후 방향성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몸집 키우는 금투업계, 외부 신용평가 ‘상향’

NH투자증권은 23일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로부터 장기 기업신용등급(Issuer Rating)을 ‘Baa1’에서 ‘A3’로 상향평가 받았다고 밝혔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자기자본 기준 금융지주 계열 유일한 빅3 증권사인 NH투자증권은 지난 1분기 실적에서 순이익 2426억원으로 전년 동기 625억원 대비 약 4배 가까운 호실적을 거뒀다. 이에 더해 우산이라고 할 수 있는 농협은행의 신용도 상향에 따른 ‘낙수 효과’로 모기업의 지원 능력 향상이 신용등급 향상으로 이어진 결과다.

앞서 지난 5월에는 무디스가 한국투자증권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조정했다. 무디스는 자체 ESG 분석을 통해 “한국투자증권의 리스크 선호 축소 및 자금조달 측면의 개선이 재무전략 및 리스크 관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지배구조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회사의 이익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ELS발행잔액과 지급보증에 따른 우발채무, 부동산 PF 규모가 줄어든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한편 22일 장 마감 후 키움증권은 RCPS로 4400억을 조달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자기자본 확대로 본업인 브로커리지 시장 경쟁력 강화와 IB업무 강화에 나설 전망이다. 키움증권은 현재 2조 7000억원 가량의 자기자본을 확보하고 있다. RCPS 발행으로4400억원이 자본에 추가로 인식되면 종합금융투자사로 올라설 수 있는 체력을 갖추게 된다.

브로커리지 1등 회사로서 자기자본이 늘어나면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자금을 빌려주는 ‘신용’사업 확대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확보된 자금으로 브로커리지 전문 증권사를 넘어 ‘투자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

◆금융지주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증권사들

금융투자업계에는 외국계 증권사 국내 지점을 포함 60개 가까운 증권사들이 경쟁하고 있다. 크게 독립계로 분류할 수 있는 미래에셋, 한국투자, 키움, 대신, 신영, KTB 등이 있는가 하면, 은행계 금융지주 하에 있는 NH, KB, 신한, 하나금투, 하이투자, BNK 등이 있다. 또 한 부류로는 산업계열의 삼성, 현대차, 한화투자 등도 있다.

TOP5라 할 수 있는 상위 5개사의 면면을 보면 미래에셋, 한국투자, NH투자, 삼성증권, KB증권 등 이들 세 부류가 모두 섞여 있다. 여의도로 대변되는 증권가에는 은행계열 증권사들에 대한 자조섞인 믿음(Myth)이 있다. 금융지주 내에서 “사고만 치지 말라”라는 지침이다.

조 단위의 이익을 내는 은행 입장에서 안정성(Stability)과 신뢰성(Credibility)이 미덕인데 같은 브랜드를 공유하는 계열 증권사가 수익 조금 내겠다고 하다가 사고를 치면 일을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푸념이다.

하지만 제로금리 시대에 접어들며 이런 안이한 사고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이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비이자수익과 비은행수익에 대한 기대수준이 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동시에 제로금리 고착화, 부동산을 위시한 자산가격의 폭등은 주식투자 한번 안해 본 이들을 모두 주식 전문가로 만들었다. 한때 비용부서로 전락해 위상이 떨어지던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들의 몸값이 다시 오르고 있다. 투자 정보를 찾는 초보 투자자들이 리포트를 열심히 읽기 시작하자, 시장의 ‘주변’에서 ‘몸통’이 된 개인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애널리스트가 귀한 몸으로 돌아온 탓이다. 이들이 출연하는 주요 유튜브 투자 채널과 대형 증권사 공식 유튜브 구독자가 100만을 넘는 일이 흔해졌다.

한 증권사 대표는 “지금은 너나할 것 없이 모든 증권사가 돈을 잘 벌지만 이 상황이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다”며, “하반기 금리인상과 테이퍼링 스케줄이 가시화되면 브로커리지의 이익 기여도는 줄어들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다시 IB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브로커리지 확대 이후의 시장을 준비하는 증권사들

요즘 증권사들은 자신들도 몰랐던 실적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1분기 유안타증권이 2008년 투자했던 알토스벤처스4호 투자금 20억이 메타버스 핵심 기업 ‘로블록스’의 상장으로 눈덩이 처럼 불어 700억 정도의 일회성 수익이 인식된 일이다. 10년도 넘는 시간 전에 투자한 회사가 새로운 트렌드에 힘입어 갑자기 상장하게 될 것을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비바리퍼블리카에 투자한 KTB투자증권의 자회사 KTB네트워크는 23일 기업가치 8조2000억원을 인정받으며 4600억원의 신규자금 유치를 마친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에 일찌감치 투자를 마치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2000만명이 쓰는 슈퍼앱에 증권, 페이먼츠, 보험에 이어 조만간 은행업까지 연결하게 될 경우 기업가치 10조의 ‘데카콘’으로 올라서는 건 시간문제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표정관리가 어려운 건 KTB만이 아니다. 1분기 실적에서 영업이익 4236억원, 순이익 3506억원으로 역대급 실적을 올린 한국금융지주는 숙적 네이버를 누르고 안정적으로 시총 3위에 오른 카카오의 선전에 싱글벙글이다.

카카오 주가가 오르는 이유가 상장이 다가오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때문인데, 한국투자증권 모기업 한국금융지주는 카카오뱅크의 주요 주주로서 보유 지분 가치가 5조원 내외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의 경쟁 비교를 거부하는 미래에셋증권은 이미 수익의 20%를 해외에서 가져온다. 미래에셋이 지난 2018년 투자한 펀드들은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과 동남아 모빌리티 넘버원 ‘그랩’에 투자한 상태다. 뉴욕증시 상장을 진행중인 이들 기업에 투자해 이미 투자 당시보다 2~3배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대표는 “하반기 주식시장은 이어지는 수출 호조에 급작스런 변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이미 거래대금 감소 등으로 1분기만큼 호실적을 이어가기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코로나19 이전 대형사들이 공들여온 투자은행(IB) 부문이 어떤 결실을 가져오느냐에 따라 그 공백을 메우고 더 성장하는 회사와 과거처럼 천수답 영업으로 그칠 회사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 직접투자시대에 살길 찾아 변신하는 자산운용사들

“운용사들의 관심은 오직 ETF와 TDF 뿐입니다. 이 시장을 놓친 운용사에게는 기회가 없어요”

운용사들의 기본 방향을 묻는 질문에 한 운용사 CIO가 내놓은 답이다. 투자가 일부 전문가들의 영역이던 시절, 개인들의 자금을 모아 뭉칫돈을 만들어 자금의 힘으로 기업을 사들이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한때 대형 펀드 설정액이 몇 조씩 되던 운용사들의 AUM은 쪼그라 들다 못해 고사 위기다.

개인투자자들의 놀라운 진화 속도는 상장된 펀드인 ETF와 은퇴시기에 맞춰 연령대별 투자 포트폴리오를 바꿔주는 TDF시장을 키우고 있다. 국민연금이 내 미래를 지켜주지 않을 거라는 우려는 개인형퇴직연금(IRP)시장으로 옮겨 붙어 다양한 펀드 편입 조정까지 신경쓰는 수준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ETF시장 1라운드는 삼성자산운용의 독무대였다. 시장의 절반을 가져갈 만큼 시장장악력(Market Share)가 컸다. 여기에 도전장을 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수수료 인하와 전장을 글로벌 무대로 넓히면서 시장을 양분했다. 특히 미국시장을 위시한 글로벌 투자에 눈을 뜬 ‘서학개미’의 등장으로 애플, 테슬라 등 몇 종목 이외에는 정보가 없는 개인들이 ETF를 활용한 테마와 섹터 투자에 나서 2라운드가 열렸다.

앞으로 펼쳐질 시장은 3라운드다.

특히 ‘돈나무 언니’라는 별칭을 가진 캐시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의 영향으로 추가 수익을 내는 액티브ETF에 눈을 뜬 국내 투자자들을 잡고, 삼성과 미래에셋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KB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한화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등 후발주자들이 섹터와 테마를 가미한 액티브ETF를 내놓으며 투자자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제공=연합뉴스)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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