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행정편의적 발상에서 강제규정을 임의화 '불법'

[스트레이트뉴스=이호연 선임기자] 통계청이 다음 달 30일까지 전국의 사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2020년 기준 경제총조사’에서 소상공인에 대한 조사가 전수조사에서 표본조사로 변경한 것과 관련해, 이제 소상공인은 정부의 정책 대상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경제총조사란 국내 산업 전체의 생산·고용·비용 등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적합한 경제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전국의 사업체 전체를 동일시점에 통일된 기준으로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총조사는 2011년 첫 조사 이후 우리나라 전체 경제활동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 사업체를 대상으로 5년마다 시행하는 전수조사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지난해 말 김상진 통계청 경제총조사과장은, "내년 경제총조사부터는 규모가 큰 5인 이상 사업체 245만개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5인 미만 사업체는 50만개 표본을 추출해 조사한 결과를 공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소상공인 전수조사는 통계청의 의무

이는 행정편의적 발상으로 위험천만이다. 통계법 제6조(조사단위 및 조사방법)에 따르면, ‘경제총조사는 총조사(전수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임의규정이 아닌 강행규정인 것이다.

법령 개정 과정을 추적해보니, 지난해 12월 23일 기획재정부는 경제총조사 규칙을 변경했다. 골자는 제6조에 규정된 조사단위 및 조사방법에서 경제총조사 조사방식을 ‘전수조사’에서, ‘전수조사 또는 표본조사’로 변경한 것이다. 시행규칙이 법 규정을 깔아뭉개 버리는 이른바 ‘행정입법의 월권’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통계청은 현 류근관 통계청장 취임한 2020년 12월 28일 관련 규칙을 변경했다. 신임 통계청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꼼수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관련 공무원을 상대로 전화문의를 했더니, 통계청과 기획재정부 담당 공무원들은 표본조사란 조사방식에 따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통계학에 대한 기본적 지식조차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통계청의 꼼수 행정도 비난을 받아야 하지만,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 식구 감싸기’ 행정처리도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전문위원도 국회법 규정된 행정입법의 타당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8대 국회부터 통계청은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소상공인 DB 부재에 대해 질타를 받아왔다.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노점상 등의 사업자에 대한 조사가 없거나 부실하다는 지적에 대해, 전임 통계청장들은 예외 없이 소상공인 DB를 제대로 구축하겠다는 발언을 해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통계청은 여러 차례 ‘통계의 정치화'를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는데,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 실시할 예정인 경제총조사를 해봐도 소상공인 DB가 제대로 구축되기는 틀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소상공인 DB 부재로 나타난 문제들

첫째, 제대로 된 소상공인 관련 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 올바른 정책이 수립되려면 관련 DB 또는 통계를 참고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정보조차 없으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이러니 소상공인 관련 정책은 언제나 현실과 동떨어진 ‘책상머리’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둘째, FTA 체결과 관련해 소상공인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지만, 법에 규정된 당연한 보상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국회는 2015년 11월 30일 한·중 FTA를 비준 처리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TV광고 등을 통해 한중 FTA의 국회비준 처리를 압박했다.

류근관 총계청장이 5월 13일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경제총조사 홍보대사로 배우 이제훈과 주시은 아나운서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류근관 통계청장이 5월 13일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경제총조사 홍보대사로 배우 이제훈과 주시은 아나운서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자유무역협정(FTA)조정법에 따르면, FTA 체결로 피해를 입은 기업은 정부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피해영향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2015년 6월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간의 자유무역협정 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동 보고서는 2015년 5월 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포함한 4개 국책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한·중 FTA 영향평가’라는 용역보고서를 기초로 작성된 것이다.

정부는 보고서에서 농수산 시장 개방 충격 최소화를 위해, 발효 이후 10년간 4783억원을 지원하는 보완 대책을 수립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세 중소상공인 분야의 산업별로 예상되는 손해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이후 정부는 중소상공인에 대한 피해영향 평가가 부실하다는 비난이 일자 산업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추가로 발주했다.

하지만, 산업연구원의 용약보고서는 2016년 1월에 발표했다. 이미 국회비준처리가 끝난 후에 보고서가 발표된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시 정부의 한·중FTA와 관련한 사전 준비가 엉망이었던 것이다. 중소상공인 산업별로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정확한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았으니, 적절한 보완대책도 나올 수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2015년 6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보고서 3쪽을 보면, ‘한·중 FTA체결 후 10년 동안 제조 및 서비스 부문에서는 5만3964명의 고용 창출이 예상되지만, 농수산 분야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160명의 고용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자영업 분야의 고용효과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자영업 정책 소외의 근본적 원인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소상공인에 대한 체계적인 DB의 구축과 운영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바꿔 말하면, 소상공인에 대한 피해영향조사에 필요한 기초자료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한중 FTA로 동대문시장은 초토화됐다. 동대문시장은 1백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의류, 완구류, 봉제 산업에 종사하는 소공인과 소상인들의 생존권 박탈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소상공인 DB 부재에 있었다.

셋째, 복지정책도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19사태로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항상 발목을 잡았던 점은 저소득층 소득파악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기준 잣대 역할을 해야 할 소득정보가 없는 선택적 지급은 불가능하고, 두루뭉술하게 전 국민 대상 보편적 지급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복지정책의 기본은 사각지대 해소와 형평성 확보다. 복지정책은 한정된 재원으로 가능한 다수의 경제적 약자에 우선 지급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투입대비 효과 극대화는 경제학의 기본이다.

영세자영업자들도 분명 저소득층에 해당하지만,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에 대한 소득을 파악하겠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산재 가입과 관련해 배달 기사나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언급되고 있지만, 폐지 줍는 노인은 아예 논의대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들은 근로자도 아니고 소상공인 카테고리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언론 컬럼을 보면 도시에서 폐지 줍는 노인수를 175만명으로 된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수치다. 이들은 분명 택배기사보다도 열악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근로장려금이나 각종 복지 지원 대상에서 대부분 배제되고 있다.

노점상이나 포장마차 등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사업자는 분명 현행법상 소상공인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자체의 행정통계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소상공인이 일용근로자 등보다 6년이나 늦게 근로장려금 수혜 대상에 포함한 것도 문제다.

넷째, 정부는 2016년부터 매년 상가권리금 통계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통계품질 문제로 외부 발표를 금하고 있다.

2015년 5월 13일 국회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권리금 보호를 법제화하면서, 건설교통부 산하 한국부동산원에 상가권리금 조사를 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외부로 공표하지 않았다. 통계품질을 이유로 국가 승인통계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법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당시, 법정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가 경비 절감과 통계 신뢰성 제고를 이유로 상가권리금 조사업무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을 제기했지만, 정부 입김에 무산된 바 있다.

자영업 손실보상제가 겉도는 것은 소상공인 DB 구축을 외면하려는 책임 방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소상공인 DB부재로 나타나는 문제점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통계청은 15일부터 실시하는 경제총조사에서 전자상거래 업체 같은 물리적 사업장이 없는 곳도 통계 작성 대상에 포함한다고 하면서도 통계 작성에 응하는 부담을 줄이고자 소규모 사업체에 한해 표본조사 방식을 도입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옹색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정권 말기라 하지만, 통계청마저 소상공인을 등한시하는 자세이어서다.

통계법에 충실한 경제총조사, 특히 전수조사는 소상공인관련 정책과 제도의 마련에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합리적인 절차를 거친 정책과 제도는 정당성 확보의 핵심이다. 지금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또 5년 간 소상공인 정책과 제도는 정치 등 기득권의 손에 놀아나면서 겉돌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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