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KT의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수사 재개
황창규 전 KT회장·구현모 현 대표, 관련 소환
KT새노조 "이사회, 구현모 기소시 즉각 해임하라"

KT가 황창규 전 회장으로 비롯된 사법리스크로 위기에 처했다.
황창규 전 KT 회장

KT가 황창규 전 회장으로 비롯된 사법리스크로 위기에 처했다.

황창규 전 KT 회장 재임 시절 회사 돈으로 상품권을 사서 되팔아 만든 현금을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으로 제공한 이른바 ‘쪼개기 후원’에 대해 검찰 수사가 다시 재개됐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구현모 KT대표의 거취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주민철 부장검사)는 9일 황창규 전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황창규 전 KT회장과 구현모 대표 등 KT 고위급 임원 7명은 지난 2014년 5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4년간 총 4억379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19·20대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금을 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업무상횡령)를 받는다.

이들은 법인자금으로 상품권을 사들인 뒤 일정수수료(3.5~4%)를 떼고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깡' 수법으로 비자금 11억5000여만원을 조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선 경찰 조사에서 KT는 '쪼개기 후원'을 위해 임직원 29명을 동원하고 일부 직원은 가족이나 지인 명의까지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KT가 의원들에게 1인당 후원 한도를 넘는 돈을 제공하기 위해 '쪼개기 후원'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자금법상 한 사람이 한 해에 국회의원 후원회에 기부할 수 있는 금액은 500만원이다. 또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으며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돈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후원 금액은 의원 1인당 수백만원 수준이지만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간사는 최대 1000만원대 후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황 전 회장 등 KT 전현직 임원들의 기소 여부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19년 1월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뒤 KT 전산센터를 압수수색하는 등 보완 수사를 벌여왔으나, 지난해 6월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 이후 한동안 수사에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KT와 관련된 조사를 진행하면서 검찰 수사도 다시 재개됐다. KT가 미국 증시에 주식예탁증서(DR)를 상장한 후 ‘쪼개기 후원’으로 수사 대상에 오른 사실을 공시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미SEC는 KT의 관련 혐의가 ‘해외부패방지법’에 해당될 가능성까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현모 KT 대표도 ‘쪼개기 후원’ 논란으로 지난 4일 검찰에 소환조사됐다.
구현모 KT 대표도 ‘쪼개기 후원’ 논란으로 지난 4일 검찰에 소환조사됐다.

KT와 관련된 검찰 수사에 KT의 현 경영진까지 수사 대상이 된 상황이다.

검찰은 지난 4월 초에 김모 KT 상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구현모 KT 대표도 지난 4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구현모 대표가 황창규 전 회장의 비서실장과 경영지원부문장을 지내던 시절에 ‘쪼개기 후원’ 논란이 일어나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관련 논란으로 구현모 대표가 직을 잃게 될 수도 있다.

KT 이사회는 지난해 2월에 구현모 대표를 후보로 선정하며 “구현모 후보에게 임기 중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한 중대한 과실 또는 부정행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사회의 사임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경영계약에 반영하도록 했고 구 후보는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이는 구현모 대표가 ‘쪼개기 후원’으로 형사처벌된다면 사임해야할 수도 있다는 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듯 KT 전현직 대표와 관련된 논란이 제기되자 KT 내부에서도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KT의 제2노조인 새노조는 9일 논평을 통해 "8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피의자인 당시 회장(황창규)은 무사히 임기를 마쳤고, 또다른 피의자인 당시 비서실장(구현모)이 아무런 제지없이 현 사장이 됐다"며 "범죄 사실이 드러나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동안 회사 내부는 엉망이 되고 있다"고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또 "이사회는 조건부 CEO를 강행한 책임을 지고, 구현모 대표의 기소 즉시 해임해야할 것"이라며 "이제와서 경영계약을 들어 국민을 기만하는 말바꾸기식 대응으로 일관해서는 KT에 미래는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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